'끄라비(저자 박형서, 문학과지성사, 2014.05.08)'는 책 속의 7개 소설 끄라비, 아르판, 무한의 흰 벽, 티마이오스, Q. E. D., 맥락의 유령, 어떤 고요 등에 하나이자 소설집의 전체 제목이다.
작가의 각 소설 속 주인공들은 다르지만 전체로 봤을 때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다. 이들은 각자 저마다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 결핍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 결핍에서의 체험과 과정이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결핍을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인공들은 끝내 저마다의 패배를 맛보면서 동시에 깨달음을 얻는 것이 각 소설에서 동일한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결핍에서 나타날 수 있는 흔한 현상은 바로 집착이다. 마찬가지로 각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집착을 보여준다. 나는 이것을 지금 현 사회를 살고있는 한국인에 대한 씁쓸한 알레고리로 본다. 객관적으로 멀리 떨어져 봤을 때 각 주인공들이 겪는 문제는 현실에서 별거 아니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별거 아닌 것이 무관심으로 비쳐지거나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치부될 수 있다.
개인주의가 점점 퍼져가는 이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인공)이 처한 문제는 어쩌면 지구 멸망과 같은 전 인류적이면서 공동체가 같이 고민할 문제보다 더 중대하고 치열한 문제일 수도 있다. 요즘 현대인들은 소위 말하는 ‘유리 멘탈’을 지녀 굉장히 쉽게 무너지고 깨지고 좌절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현대인들의 특성이 투영됐다.
결국 각 소설 속에서의 배경과 사건은 다르지만 근원적으로 봤을 때, 집착의 형태는 달라도 거기에서 오는 본질적인 외로움, 궁핍함, 패배감이 주인공의 저마다 사연에 녹아내려간 것이다.
그러한 결핍과 집착을 가진 주인공들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상상력이 재치가 있다. 소설의 배경이 현실이라면 주인공이 겪는 상황은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는 것과 반대로 소설 ‘티마이오스’처럼 배경이 현실이 아니라 완전히 동떨어진 우주라는 초현실이라면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정말 그럴 듯하게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동시에 각각의 소설로 봤을 때나 소설 전체를 통합해 봤을 때, 허구적 서사가 진행되면서 초현실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적절하게 왔다갔다 수위를 조절한 것이 일품이다. 그 부분이 읽는 과정에 있어서 대단한 몰입감과 경탄을 가져온다.
하지만 각 소설을 읽으면서 마지막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내가 주인공에게 빠져들어 읽었는데 그 결과가 허무함이라는 것은 단편소설이기에 풀어낼 수 있는 결말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하면서 독자에게 스스로 위안을 줄 수도 있다.
그 아쉬움과 여운이 계속 다음 소설로 넘어가면서 감정을 새롭게 환기시킨다. 그러면서 다시 허무함이 느껴지다가 또다시 새 소설을 맞이하며 감정이 환기된다. 계속 반복적으로 가다가 마지막 소설인 '어떤 고요'에서 작가의 자서전적 소설로 마무리를 하면서 이 소설집은 진심을 담아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허구를 담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서 다소 무겁고 역설적인 귀결을 짓는다. 그 안의 내용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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