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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유진)는 밤에 집에 몰래 나가 산책을 하고 돌아와 잠이 든다. 깨어난 후 온몸에 피범벅이 된 자기를 발견한다. 방으로 나온 유진은 핏물로 도배되다 싶은 거실, 부엌 바닥을 보게 되고 그 끝에 죽은 어머니를 발견한다. 혼란스러운 유진은 자기 자신을 범인으로 시인하고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추적한다.

종의 기원(작가 정유정, 은행나무, 2016)의 정유정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본성안에도 '어두운 숲'이 있기에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긴다. 작가가 인간의 '악'에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는 내면의 악을 넘어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의미였을까? 이번 작품에는 주인공이 '나'로 등장한다. 지난 작품들에도 매번 다른 악인을 등장시키고 형상화시켰으나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다. 그들이 '그'였기 때문이다. 3인칭으로 서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객체가 아닌 주체인 '나'여야만 우리의 본성 어딘가에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 악이 어떻게 커나가는지 지켜볼 수 있다는 의미다.

주인공 친구 '해진'이 '유진'의 엄마에게 말한다.

"희망을 가진다고 절망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요. 세상은 사칙연산처럼 분명하지 않아요. 인간은 연산보다 더 복잡하니까요"

희망과 절망은 반비례 관계가 아니다. 세상은 정량적이지 않다. 그 안에 더 복잡한 인간이 살기 때문이다. 인간은 선과 악이 화학적으로 뒤섞인 존재이기에 무섭고 슬프지만 가능하다.

"나 역시 보속을 높였다. 어쩐지 숨이 차는 기분이었다. 뛰는 것도 아닌데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새로 이가 나려는 것처럼 잇몸이 근질근질했다. 누군가 입김이라도 불어넣은 것처럼, 귀밑으로부터 뺨까지 자잘한 소름이 돋았다. '흥분'이나 '긴장'같은 단어로는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 이상반응이었다."

주위 상황때문인지 아니면 유진의 내면의 작용의 변화인지 '유진'의 점점 선은 중화되고 악으로 자기도 모르게 잠식되는 중이다.

"세상이 사라졌다. 위장에서 요동치던 불길이 성욕처럼 아랫배로 방사됐다. 발화의 순간이었다.

'유진'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악이 됐다.

독자들도 내면의 '악'을 마주하기를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의 치부이기 때문에 무의식 속 저편에 숨긴다. 사회에서 이성과 도덕이 있기에 우리는 의식 속의 '선' 손을 붙잡으며 삶을 산다. 가끔씩 무엇인가 치이고 힘들 때 악심이 든다면 책을 통해 내면의 '악'을 마주하는 '유진'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껴보면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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