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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중반에는 경제대공황이 절정에 달했다. 이에 사회적 불안감과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반감을 희화한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가 등장했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저급'한 슬랩스틱 코미디와 '고급'스러운 로맨틱 코미디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다. 빠른 전개와 속사포 같은 대사들로 남녀 간의 구애 의식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특히 가부장 사회에서 성 역할, 즉 여성은 능동적인 남성성에 의해 쟁취되는 수동적 대상이라는 관습을 해체하려 노력했다. '패미니즘'이 생길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성과 젠더를 적나라하고 거침없이 묘사했다. 본래 변화구를 의미하는 야구 용어인 스크루볼은 이 코미디의 변화무쌍한 서사 진행을 대변했다. 또한 스크루(screw)는 '성교하다'의 저급한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하위 장르의 명칭은 섹슈얼리티에 집중된 주제를 상징하는 것이다. 결국 스크루볼 코미디의 궁극적인 이슈는 남녀 양성 간의 성적 접근과 방어를 근간으로 하는 유머러스한 갈등이다. 대표작으로 '어느 날 밤에 생긴 일(It happened one Night)(1934)'과 '베이비 길들이기(Bringing up Baby)(1938)' 등을 꼽을 수 있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시추에이션 코미디(situation comedy), 일명 시트콤(sitcom)이라는 변주된 형태로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1940년대 이후로는 다양한 형태의 하위 장르가 등장했다. 논제 코미디(thesis comedy)와 섹스 코미디다. 논제코미디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세계 정치를 노골적으로 풍자하는 영화다. '니노치카(Ninotchka)(1939)'와 '독재자(The Great Dictator)(1940)'가 여기에 해당된다. 1950년대에 등장한 섹스 코미디(sex comedy)는 전쟁 후의 신경쇠약증후군이라는 문제를 성적으로 희화했는데 '푸른 달(The Moon is Blue)(1953)'과 '7년 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1955)'을 예로 들 수 있다.

1960년대에 유행했던 블랙 코미디(black comedy)는 이중적인 인간성과 부조리한 사회를 냉소적으로 표현했다. 염세주의적 전쟁 코미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1964)'와 한국전에 대한 풍자극 '매쉬(MASH)(1970)' 등이 있다.

90년대 코미디

90년대 코미디는 기존의 내러티브 공식과 전형 캐릭터(stereotype)를 적절히 혼합하며 발전해 왔다. 슬랩스틱 코미디에서의 부랑자라는 주제는 현대 코미디의 다문화주의로 녹아들었다. 다문화 사회의 타자들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이 통쾌하면서도 씁쓸한 웃음을 유발시킨다. 예를 들어 '그린 카드(Green Card)(1990)'에서는 이민국을 속이기 위해 꾸며낸 엉뚱한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 방가? 방가!(육상효, 2010)'는 자국인이 스스로 이방인임을 자청하고 나서야 취업에 성공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제시한다. 지금도 취업이 안돼서 청년들은 허덕이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취업이 된다니 참으로 웃기면서 슬픈 현실이다. 드라마를 예를 들자면 모던패밀리 정도가 있을 듯 싶다.

로맨틱 코미디의 '계급을 초월한 결혼'이라는 설정은 '프리티 우먼(Pretty Woman)(1990)'이나 '노팅 힐(Notting Hill)(1999)' 등에 계승되면서 사회 통합을 보다 신랄하게 희화한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섹슈얼리티는 '통과의례'라는 모티브로 변주되곤 하는데, 일종의 성장 드라마의 코미디 버전이다. 즉, 소년에서 남자로 소녀에서 여자로 단숨에 성장했기에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희화하거나, 아예 남녀의 성을 뒤바꿈으로써 젠더의 관점을 뒤틀어 버리는 경우다. '빅(Big)(1988)', '체인지(이진석, 1996)',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1999)' 시리즈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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