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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장르는 영화의 탄생과 동시에 시작됐다. 1895년 12월 뤼미에르 형제(A. & L. Lumière)가 상영한 영화들은 이미 다양한 코믹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한 편이 '물 뿌리는 정원사(The Sprinkler Sprinkled)'다.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연출된 코미디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나도 예전에 교양시간에 봤는데 짧지만 익살스러웠다.

시간이 흘러 1920년대부터 본격적인 코미디 장르인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가 나타났다. 슬랩스틱은 원래 '넘어지다, 난리법석을 부리다'의 뜻을 가졌다. 본래 팬터마임(pantomime) 연극에서 광대들이 서로를 때리는 데 사용하는 작은 막대기를 지칭한다.

따라서 슬랩스틱 코미디는 배우들이 가사도구나 생활용품 등을 집어던지며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상황을 통해 웃음을 연출하는 전형적인 신체 코미디다. 프랑스에서는 당대 최고의 희극배우 막스 랭데(Max Linder)가, 미국에서는 '코미디의 왕' 맥 세네트(Mack Sennet)가 슬랩스틱 코미디의 장을 열었다.

세네트에 의해 설립된 키스톤 스튜디오(keystone studio)는 수많은 슬랩스틱 코미디 스타를 탄생시켰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이다. 찰리 채플린은 누구나 다 알것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라는 명언을 그가 말했다.

각설하고 채플린은 슬랩스틱을 우아한 안무로 승화시켰다.,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으로 당시의 계급사회를 유연하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부랑자 캐릭터는 평생 낡고 헐렁한 옷에 지팡이를 짚은 모습으로 애잔한 정서를 자아냈다.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Gold Rush)'(1925)와 '시티 라이트(City Light)'(1931) 등은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는 슬랩스틱 코미디다.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버스터 키턴(Buster Keaton) 역시 슬랩스틱 코미디 스타다. 채플린이 익살스런 표정 연기의 대가였다면, 키턴의 트레이드마크는 무표정한 얼굴인 스톤페이스(stone face)였다. 채플린이 늘 부랑자였던 반면 키턴은 중산층의 샐러리맨을 연기했다. 또한 채플린이 기계화된 근대사회에 거부감을 드러냈다면 키턴은 기계 장치를 끌어안으며 조화로운 미래 사회를 제시했다. 그렇게 키턴은 '장군(The General)'(1926)에서는 기관사로, '카메라맨(The Cameraman)'(1928)에서는 촬영기사로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했다.

슬랩스틱 코미디를 대표하는 셋째 인물은 해럴드 로이드(Harold Lloyd)다. 로이드는 주로 화이트칼라의 가치관을 대변했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 신분 상승이라는 환상을 유머러스하게 연기했다. 따라서 '마침내 안전!(Safety Last!)'(1923)에서 맨손으로 고층건물을 기어오르는 로이드의 모습은 사회적 성공을 위한 강한 승부욕을 상징한다. 20세기 초부터 이런 유명한 배우를 언급하니 그들이 출연한 작품도 왠지 작품성이 있을 듯하다.

슬랩스틱 코미디는 당시 미국 사회의 격변과 부작용을 무음으로 담아냈다. 그리고 기술이 점차 발전해 소리(sound)가 영화에 도입되면서 변화를 맞게 된다. 1920년대 후반에 등장한 토키(talkie)가 코미디에 대사를 선사하면서 로맨틱 코미디(romantic comedy)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사랑과 음모에 코믹스럽게 뒤엉키는 연인들이 내러티브의 중심에 섰다. 로맨틱 코미디는 슬랩스틱 요소를 배제하고 위트 있는 대사와 유려한 영상 연출을 양분으로 성장했다. 에른스트 루비치(Ernst Lubitsch)의 '낙원의 곤경(Trouble in Paradies)'(1932)이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작이다. '루비치 터치(Lubitsch touch)'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세련된 영상미를 자랑한다.

앞서말한 20세기 초 영화들을 언급하니 고전영화를 다시 봐야할 욕구가 마음에서 샘솟는다. 옛 코미디 영화 역사를 훑고나니 역시 고전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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