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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시절'은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쓴 소설이다. 작가의 소개를 먼저 하자면 조지 오웰은 20세기 영문학에서 정치적인 글쓰기로 독특한 문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보통 제국주의의 허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거기에서 좌절을 느끼게 하는 식의 작품을 많이 쓴다. ‘버마시절도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의 허상을 파헤친 비극적 리얼리즘을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을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두 주인공 플로리와 엘리자베스의 행동 위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처음에 읽었을때는 그냥 제국주의의 허와 실을 담긴 문학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신분석학을 인물에 적용해보니 소설이 완전 다르게 보였다. 뭔가 심리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무엇인가 그 인물의 행동이 다 이유가 있고 각자 그들만의 사연이 있었다. 적용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지만 막상 해보니 꽤 그럴싸한 느낌을 받았다.

줄거리는 주인공 플로리는 영국인으로 자국의 식민지인 오늘날 미얀마라고 불리는 버마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영국의 제국주의가 낳은 허와 실을 깨닫고 제국주의를 증오하는 인물이다. 그의 주위에는 영국의 제국주의에 복종하는 미얀마인과 인도인 그리고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백인 관료들과 부자들이다. 백인들은 자기들의 사교 클럽에 식민지 원주민을 적어도 한사람 소속시켜야한다는 영국 정부의 지침에 대해 크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플로리도 역시 그들 클럽에 속해 있었다. 그는 아주 친한 인도인인 베라스와미를 추천하고 싶었다. 물론 그는 영국 제국주의를 숭상하는 친영파지만 플로리는 그의 유일한 말동무이자 믿을만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 백인들의 불만에 자기의 생각을 크게 주장하지는 못한다. 시간이 지난 후에 원주민과 백인들의 갈등은 고조되고 결국에는 싸움이 일어난다. 플로리는 사건을 수습하면서 주위의 환호를 산다. 백인우월주의와 허황된 꿈을 가지고 있는 여인인 엘리자베스도 그를 다시 봤다. 그는 그녀를 사모하기 때문에 희망을 품었지만 잠시 뿐이었다. 어느 순간 엘리자베스에게 정말 모욕적인 취급을 당하자 그는 결국 자살한다.

플로리의 죽음을 소설에서는 제국주의의 피해를 입은 것이라고 은근히 내비치는 구석이 있다. 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것이 그의 주위에 있는 백인들이고 최종적으로 그가 사랑했던 여인 엘리자베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죽음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자면 먼저 그가 엘리자베스를 만나기 전인 영국과 미얀마에서의 삶, 그녀를 만난 후에 생긴 그녀와의 관계이다. 여기에서 엘리자베스와의 관계에서의 문제는 플로리의 생애뿐만 아니라 엘리자베스의 생애에도 어떤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과연 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먼저 플로리의 생애를 살펴보자면 그는 미얀마에 산 지 15년 됐다. 그동안 미얀마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공개적인 의견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는 훨씬 더 오래된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뺨에 난 모반이 형성됐던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어렸을 적 모반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아홉 살이 돼 처음으로 학교에 갔을 때 마주했던 아이들의 눈초리, 며칠이 지난 후부터 들리던 상급반 어린이들의 야유, ‘푸른 얼굴이라는 별명. 이 별명은 나중에 당나귀 엉덩이로 바뀌었다.

몇년 후 플로리는 당나귀 엉덩이라는 오명도 잊으며 살았다. 플로리는 거짓말쟁이에다 괜찮은 축구 선수로 성장했는데, 이 두 가지는 학교에서 성공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마지막 학기 때 그와 그의 친구는 별명을 만들어 놀렸던 학교 아이를 붙잡아 스페셜 토고를 했다. 11학년 반장이 그 아이를 징 박힌 육상화로 여섯 대나 때렸다. 그 시절이 플로리에게는 삶의 준비기였다. 

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값싼 삼류 공립 학교에 진학했다. 가난하고 무질서한 그 학교는 일류 공립 학교가 갖춘 미덕, 다시 말해 학문적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학생들이 배우는 것도 거의 없었다. 또 낮은 급료를 받는 가련한 선생님들에게서 은연중에 배울 지혜도 많지 않았다. 플로리는 야만인과 같은 얼간이로 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그는 자신에게 있는 어떤 가능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어쩌면 고통이 뒤따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그는 이전까지는 이런 가능성들을 억압해왔었다. 그 억압은 그가 아마 푸른 얼굴’, ‘당나귀 엉덩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가 미얀마에 온 것은 스무 살도 채 안 돼서다. 그에게 헌신적인 부모는 목재회사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빠듯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사례금까지 주어가면서 무척이나 힘들게 그의 일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그는 미얀마에 온 후 부모가 보낸 편지에 몇 개월에 한 번씩 성의 없는 답장만 보냈을 뿐이다. 미얀마에서의 처음 6개월은 랑군에서 보냈는데 거기에서 그는 회사 업무를 배웠다. 그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다른 네 명과 함게 합숙소에서 생활했다. 그들의 방탕함은 정말 심했다. 술과 담배에 찌들었고 창녀들에게 돈을 흥청망청 썼다. 이 시절 또한 그에게는 삶의 형성기였다. 이러한 방탕한 생활은 그의 학생 때의 억압된 것의 분출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의 놀림과 욕구 억압이 미얀마에서 발동된 것이다. 

그렇게 그는 미얀마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그의 육체가 열대 기후의 이상한 리듬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스물네살이 되던 해에 휴가를 얻어 영국에 들릴려고 했으나 전쟁이 터져버렸다. 사실 그는 군복무를 기피하고있었다. 그는 위스키, 하인 그리고 미얀마 여자들을 연병장에서의 무료한 훈련이나 지독한 행군과 맞바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나라는 위험으로부터는 벗어나 있지만 사람을 고독하고 나태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제공했다. 다행히 플로리는 독서를 무척 좋아해 생활이 무료할 때면 책과 함께 생활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유치한 즐거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해 싫든 좋든 혼자 사고하는 법을 배웠다.

세월이 흘러 스물입곱살이 되던 해, 그는 흉측한 종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번져 생일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피부염의 원인은 아무 술과 나쁜 음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 낫고 난 뒤에도 흉터가 생겨 2년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갑자기 그는 나이들어 보였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젊음은 끝나 가고 있었다. 열병 외로움, 음주로 점철된 8년간 동양 생활이 그를 끝장낸 것이다.

그 후 해가 바뀔 때마다 그는 더 외로웠고 더 비참한 심정이 들었다. 그의 사고의 중심에 자리 잡고 모든 것을 증오하게 만드는 것은 그 자신이 소속돼 살고 있는 제국주의에 대한 더욱더 심한 증오였다. 왜냐하면 철이 들면서 그는 영국인들과 그들의 제국에 대한 실상을 통찰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전제 정부이다. 분명히 자비롭긴 하지만 궁극적 목적은 약탈인 전제 정부이다. 그리고 플로리는 같은 사회 속에 살면서 <백인 나리>가 된 동양의 영국 사람들을 미워한 결과 이제 그들에게서 어떠한 정당성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미얀마는 그의 모국이 돼있었다.

플로리의 이야기에서 그의 인생에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그가 가진 모반이었을 것이다. 이 모반은 애증의 대상이라 볼 수 있다. 자기의 몸의 일부이지만 그가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 모반은 그에게 작중에서 끝까지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또한 이 모반은 영국의 제국주의라고도 볼 수 있다. 그는 제국주의를 증오했으나 그 사회에 어쩔 수 없이 속해 있어야만 현실을 겪고 있었다. ‘모반제국주의는 환유 관계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둘 다 트라우마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그녀는 스물두 살을 갓 넘었으며, 부모는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다. 차 중개인이었는데 사업이 잘될 때가 있는가 하면 거의 파산에 이르기도 하는 등 기복이 너무 심했다. 그는 낙천적이라 장사가 잘될 때 번 돈을 모아 두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무능력하고 철이 없고 허세 부리기를 좋아했으며, 또 있지도 않은 예술적 기질을 핑계 삼아 자신의 의무를 게을리하는, 자기 연민에 빠진 여자였다. 시민운동에 수년 동안 장난삼아 참가하다가, 글을 쓴답시고 창작 활동으로 헛되이 시간을 보내더니, 결국에 가서는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림 그리기는 재능이나 노력 없이도 연습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부모는 다 속물들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큰돈을 벌어 엘리자베스는 학비가 상당히 비싼 기숙학교를 2학기동안 다녔다. 엘리자베스는 거기에서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들 모두는 토요일 오후만 되면 자신들의 조랑말을 타고 돌아다녔다. 엘리자베스에게는 부자들과 어울렸던 이 기간이 바로 자신의 기질을 영원히 결정짓는 기간이었다. 때문에 그녀 삶의 방향은 하나의 믿음으로 요약됐다. 그 믿음은 선이란 부자들, 우아한 사람들, 귀족들 등과 동의어 관계이며 악이라는 것은 가난뱅이들, 하층민들, 노동자들과 동의어 관계라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가 성장함에 따라 하찮은 물건에서 부터 인간의 영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사랑스러운것 혹은 야만적인것으로 분류됐다. 즉 그녀도 자신의 부모와 똑같이 속물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보자면 그녀는 그녀의 부모와 동일시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파산을 맞이한다. 그녀는 야만적인 학교로 전학을 가 교육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마저 독감에 걸려 죽었다. 그의 아내는 1년에 150파운드라는 연금을 물려받았는데 그녀의 씀씀이로는 영국에서 도저히 살 수 없기에, 두 여자는 생활비가 영국보다 싸고, 또 그녀의 어머니가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파리로 이사를 갔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낭만적일 줄 알았으나 현실은 처참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파리에 화실을 하나 마련하더니 이내 예전처럼 지저분하고 빈둥거리며 게으른 상태로 되돌아갔다. 지출이 항상 수입을 초과하는 등 돈 관리도 엉망이어서, 엘리자베스는 수개월동안 충분히 먹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은행 지점장 집의 영어 방문 교사로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지점장은 그녀를 자꾸 건드렸다. 그녀는 테이블 밑에서 접근하는 그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야 했다. 정말 비열하고 야만적인 행동이었다. 사실 그것은 엘리자베스가 예전에 알지 못했던 야만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짓이었다.

이보다 더 그녀를 가장 우울하게 만들고 또 끔찍한 하류 세계 속으로 자꾸 빠져들게 만든 것은, 바로 어머니의 화실이었다. 그녀는 모든 물건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결코 정리하지 않아 하인이 없으면 안 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림 그리기와 살림살이 사이의 중간쯤에서 악몽같이 초조한 삶을 살았는데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잘하질 못했다. 그녀의 더러운 화실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속이 너무 상했다.

이후 그녀는 목공예를 하거나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등 저급한 반()예술 활동을 하면서 얻는 조그만 수입으로 비효율적인 삶을 사는 어머니의 친구들도 싫어했다. 엘리자베스가 예술을 크게 증오하게 된 계기는 물론 눈앞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 때문이었다. 사실 모든 지성인들은 그녀의 눈으로 볼 때 다 야만적이었다. 그녀 생각에 진짜 근사한 사람들은 총명하지 않다. 그들은 책을 쓰거나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하찮은 일에 열중하지 않는다. 모든 지식인들의 사상은 사회주의 같이 것이었다. ‘지식인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어휘 목록에서 독설이었다.

파리에서 생활한 지 2년이 다 되어갈 무렵, 어머니가 식중독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미얀마에서 그녀의 삼촌과 숙모가 미얀마에서 즉시 전보를 보내왔다. 미얀마에 와 함께 살고 거기서 남편감을 찾으라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그래서 미얀마로 떠났다. 파리에서의 생활도 그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예술, 지성이란 단어에서 굉장한 혐오를 느낀다. 이것은 그녀의 항문기, 잠복기에 형성된 성격과 완전 대립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드디어 미얀마에서 플로리와 엘리자베스가 만난다. 여기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먼저 설명하기에 앞서 소설 속에 플로리의 모반을 설명할 때 그 모양은 초승달같다고 묘사했다. 그리고 이 둘이 만날 때는 엘리자베스가 정말 급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산책을 하다가 정글 속으로 들어갔는데 물소를 만난 것이다. 그 비명을 듣고 플로리가 쫓아왔다. 그리고 물소를 달래서 돌려보내고 엘리자베스를 구했다. 그런데 그 물소를 초승달처럼 생긴 뿔을 가졌다고 묘사했다. 즉 초승달처럼 생긴 뿔을 가진 물소가 바로 모반을 가진 플로리로 은유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억압된 것의 귀환으로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가 물소라는 혐오스러운 존재를 억압했으나(비명을 지르고 기겁한 행동) 억압된 것이 플로리를 통해 귀환된 것이다.

또 다른 부분에서도 억압된 것의 귀환이 나타난다. 엘리자베스는 플로리가 예전에 미얀마 여자와 같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자. 그와 교류를 끊었다. 그리고 베랄이라는 남자와 만나고 있었는데 그와 함께 있는 것을 즐겨했다. 베랄은 플로리와 정반대의 사람으로 엘리자베스가 싫어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를 지속하면서 그녀는 플로리를 거의 잊고 지냈지만 그를 기억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의 모반뿐이었다. 이것 또한 억압된 것의 귀환인 것이다. 결국 이것은 억압과 억압된 것의 회귀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베랄은 결국 떠났고 그녀는 다시 플로리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서로 암묵적으로 결혼을 동의했지만 플로리의 옛 미얀마 여자인 마 흘라 메이가 교회에서 난동을 피웠다. 순간 플로리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그 표정을 본 엘리자베스는 그의 모반을 보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플로리에게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의 옛 미얀마 연인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플로리의 얼굴은 너무나 흉측하고 경직되고 늙어 보여 마치 해골 같았다. 모반만이 그의 얼굴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그녀는 그의 모반 때문에 그가 싫은 것을 깨달았다. 무의식의 수용정도가 넘어선 것이다. 즉 억압수준이 무의식의 수준 내에서 수용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가면 그 동안 억눌렸던 욕구나 충동이 폭발적으로 세어나와 결국 큰 문제행동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러하기 때문에 다른 방어기제에 비해 종국적 파국이 훨씬 더 강렬하다. 그리고 그 파국은 바로 플로리의 자살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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